팀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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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팀 버클리는 1947년에 태어나 1975년에 사망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재즈, 포크,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했다. 1960년대 중반 데뷔하여 포크 록 스타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재즈와 아방가르드 음악의 영향을 받아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펑크와 소울 음악을 선보였으나, 28세의 젊은 나이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사후에도 그의 음악은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아들 제프 버클리 또한 음악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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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클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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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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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Timothy Charles Buckley III |
출생일 | 1947년 2월 14일 |
출생지 | 워싱턴 D.C., 미국 |
사망일 | 1975년 6월 29일 |
사망지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
직업 | 음악가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66년–1975년 |
악기 | 보컬 기타 |
장르 | 사이키델릭 포크 포크-재즈 아방-재즈 아방-포크 포크 록 펑크 |
레이블 | Elektra Straight Warner Bros. DiscReet |
웹사이트 | timbuckley.net |
2. 초기 생애 및 경력
팀 버클리는 1947년 2월 14일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뉴욕주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다. 5살 때부터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은 진보적인 재즈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7]
팀 버클리는 1966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포크 록 스타일을 추구했으나, 점차 재즈, 아방가르드, 훵크,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1956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벨 가든스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할머니는 베시 스미스와 빌리 홀리데이를, 어머니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주디 갈랜드를, 아버지는 행크 윌리엄스와 조니 캐시의 컨트리 음악을 소개했다.[8] 13살에는 밴조를 독학하고 친구들과 포크 그룹을 결성하여 고등학교 행사에서 연주했다.[9]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급 임원, 야구팀, 풋볼팀 쿼터백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10] 풋볼 경기 중 왼손 손가락 부상으로 바레 코드 연주가 어려워졌지만, 이를 계기로 확장 코드를 사용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했다.[11]
애너하임의 로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12] 수업을 빼먹고 음악에 몰두했다. 미래의 작사가 래리 베켓, 베이시스트 짐 필더와 함께 음악 그룹을 결성했다.[13] 버클리와 베켓은 수십 곡의 노래를 썼으며, 그중 일부는 데뷔 앨범 ''Tim Buckley''에, "Buzzin' Fly"는 1969년 LP ''Happy Sad''에 수록되었다.[10]
1965년 풀러턴 칼리지에 진학했지만, 2주 만에 중퇴하고 음악 활동에 전념했다.[9][10] 로스앤젤레스의 포크 클럽에서 연주하며 경력을 쌓았다. 1965년 여름에는 댄 고든이 공동 설립한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했고, 부에나 파크의 화이트 룸과 로스앤젤레스 Troubadour의 월요일 밤 후테나니 등 오렌지 카운티 커피하우스에서 연주했다.[14] 그해 잡지 ''Cheetah''는 버클리를 스티브 노난, 잭슨 브라운과 함께 "오렌지 카운티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8]
1966년 2월, 마더스 오브 인벤션의 드러머 지미 칼 블랙의 추천으로 마더스의 매니저 허브 코헨에게 발탁되었다.[9] 코헨은 버클리에게 그리니치 빌리지의 나이트 아울 카페 장기 공연을 주선했고, 버클리는 여자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15] 보워리에서 살면서 리 언더우드를 만나 기타 연주를 부탁했고,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이자 협력자가 되었다.[16] 코헨의 매니지먼트 아래 6곡의 데모 아세테이트 디스크를 녹음하여 엘렉트라 레코드의 잭 홀츠먼에게 보냈고, 음반 계약을 제안받았다.[8][13][9]
3. 음악 활동
1966년 8월, 버클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3일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데뷔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전형적인 포크 록 스타일이었지만, 버클리의 독특한 목소리와 선율적인 작곡으로 주목받았다.[9] 1967년에는 굿바이 앤 헬로를 발표하며 더욱 발전된 음악성을 선보였다. 이 앨범은 1960년대 후반 스타일의 시와 다양한 박자의 곡들을 담고 있었으며, 버클리의 오리지널 곡과 래리 베켓과의 협업으로 구성되었다.[18][19]
버클리는 밥 딜런과의 비교를 꺼렸으며, 딜런과 그의 작품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했다.[20] 그는 언론을 경계하며 인터뷰를 자주 피했고,[21] TV 출연에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8]
1968년, 버클리는 BBC의 존 필이 진행하는 ''탑 기어'' 라디오 쇼에 출연하는 등 두 번의 유럽 투어를 가졌다.[22] 같은 해 말, 그는 포크와 재즈의 영향을 반영한 ''해피 새드''를 녹음하여 그의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인 81위를 기록했다.[23]
1969년부터 버클리는 캐시 베르베리안과 같은 아방가르드 음악가에게 영감을 받아 루치아노 베리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와 같은 작곡가들의 아이디어를 아방가르드 록 장르에 통합하려 시도했다. 그는 《Blue Afternoon》, 《로르카》, 《스타세일러》 세 앨범을 위한 곡을 쓰고 녹음했다. 이 시기 버클리의 음악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발매된 앨범들은 차트에 진입했다.[26]
1970년, 버클리는 자신의 앙상블 밴드 ''Starsailor''를 해체하고 새로운 훵크 밴드를 결성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인사'', ''세프로니아'', ''바보를 봐'' 세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들은 성적으로 솔직한 가사로 인해 방송을 타지 못했지만, 컬트 팬은 유지했다.
1975년, 버클리는 라이브 앨범으로 복귀를 준비하며 과거에 외면했던 자신의 청중 반응에 맞춰 공연하기 시작했다.
3. 1. 포크 록 (1966-1968)
1966년 8월, 버클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3일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데뷔 앨범을 녹음했다. 그는 "저는 19살 밖에 안 됐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디즈니랜드 같았죠. 누구든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라고 회상했다.[8] 이 음반에는 버클리와 언더우드, 그리고 오렌지 카운티 출신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가 참여했다. 언더우드의 재즈와 컨트리 즉흥 연주가 텔레캐스터 기타와 섞여 버클리의 초기 사운드의 특징적인 부분이 되었다. 자크 홀츠먼과 폴 로스차일드의 프로듀싱, 그리고 잭 니체의 현악기 편곡이 이 음반의 60년대 중반 사운드를 확고히 했다.
이 앨범의 포크 록 스타일은 당시 전형적인 것이었지만, 언더우드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니체의 현악기 편성이 "음악적 품질을 향상시키지 못했다"고 느꼈다.[15] 평론가들은 버클리의 독특한 목소리와 선율적인 작곡에 주목했다.[9]
언더우드는 이 음반을 "첫 번째 시도, 순진하고, 뻣뻣하고, 불안정하고, 순수하지만 시장으로 들어가는 티켓"으로 간주했다.[11] 홀츠먼도 비슷한 감정을 표현하며 버클리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9] 래리 베켓은 밴드가 청중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 때문에 발목을 잡혔다고 말했다.[13]
Elektra는 데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Wings"와 "Grief in My Soul"을 싱글로, "Aren't You the Girl"/"Strange Street Affair Under Blue"를 싱글로 발매했다. 버클리는 이어서 "Once Upon a Time"과 "Lady Give Me Your Key"를 발표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잠재력을 보여주었다.[17] Elektra는 이 곡들을 싱글로 발매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 곡들은 Elektra의 음반 보관소에 남겨졌다. Rhino Records는 "Lady Give Me Your Key"를 찾을 수 없어 ''Morning Glory: The Tim Buckley Anthology''에 수록하지 못했지만,[13] 이 곡은 Light in the Attic Records가 2017년에 발매한 미발표 1967년 어쿠스틱 세션 모음집의 타이틀 곡이 되었다. "Once Upon A Time"은 2009년 Rhino의 ''Where The Action Is 1965–68 Los Angeles'' 앤솔로지에서 공개되었다.
1967년에 발매된 ''굿바이 앤 헬로''는 1960년대 후반 스타일의 시와 다양한 박자의 곡들을 담고 있었으며, 20세의 버클리에게 야심찬 앨범이었다.[8][18] Elektra가 버클리와 그룹에 대해 가진 자신감을 반영하여, 앨범의 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재량을 부여했다.[17] 베켓은 작사가로 계속 참여했으며, 앨범은 버클리의 오리지널 곡과 베켓-버클리 협업으로 구성되었다. 평론가들은 버클리 음악의 향상된 가사 및 멜로디 품질에 주목했다.[19] 버클리의 목소리는 이전 앨범 이후 발전을 이루었고 언론은 그의 낮은 음역과 가성을 모두 높이 평가했다.[18]
앨범의 주제는 이전 앨범과 차별성을 두었다. 베켓은 "No Man Can Find the War"에서 전쟁의 심리적 본질을 다루었고,[17] 언더우드는 "Pleasant Street"에서 어두운 영역으로의 버클리의 진입을 환영했다.[11] "I Never Asked to Be Your Mountain"은 그의 별거한 아내와 아이에게 고백하는 가사를 담고 있었고,[18] 내성적인 포크송과 정치적 주제의 내용이 혼합되어 포크 팬과 반전 운동가들을 끌어들였다.[11] 홀츠먼은 버클리를 믿고 솔로 활동가에게는 이례적으로 선셋 스트립에 광고 공간을 임대했다.[19] 버클리는 밥 딜런과의 비교를 멀리하며 딜런과 그의 작품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했다.[20] ''굿바이 앤 헬로''가 버클리를 스타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전 앨범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171위까지 올랐다.[18]
버클리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의 앨범 ''The Best of Tim Buckley''가 1969년 영화 ''체인지''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었다. 버클리는 더 몽키스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Song to the Siren"을 공연했다.[8][18] 버클리는 언론을 경계하며 인터뷰를 자주 피했다.[21] 조니 카슨이 진행하는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한 후 버클리는 조니 카슨에게 냉담하고 모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또 다른 TV 출연에서는 "Pleasant Street"에 맞춰 립싱크하는 것을 거부했다.[8]
베켓이 군대에 징집된 후 버클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했고, 그가 연관된 재즈/블루스-록을 "백인의 절도와 감정적인 사기"라고 묘사했다.[11] 찰스 밍거스, 델로니어스 몽크, 롤랜드 커크, 그리고 보컬리스트 레온 토마스와 같은 재즈 거장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버클리의 사운드는 이전 녹음과는 달라졌다.
1968년, 버클리는 두 번 유럽 투어를 가졌는데, 첫 번째는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을 포함하여 BBC의 존 필의 ''탑 기어'' 라디오 쇼에 출연하고, 독일에서 에 출연했으며, 다시 영국과 덴마크를 투어했다.[22] 그해 말, 그는 포크와 재즈의 영향을 반영한 ''해피 새드''를 녹음했고,[23] 그의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인 81위까지 올랐다.
3. 2. 재즈, 아방가르드 (1968-1970)
1969년 버클리는 《Blue Afternoon》, 《로르카》, 《스타세일러》 세 앨범을 위한 곡을 쓰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캐시 베르베리안과 같은 아방가르드 음악가에게 영감을 받아 루치아노 베리오,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와 같은 작곡가들의 아이디어를 아방가르드 록 장르에 통합했다. 버클리는 《Happy Sad》와 스타일 면에서 유사한 앨범인 《Blue Afternoon》을 위해 8곡을 선택했다.[24] 리 언더우드는 1977년 《다운비트》 잡지 기사에서 버클리가 《Blue Afternoon》에 열정이 없었고, 이 앨범이 그의 사업 파트너를 기쁘게 하기 위한 형식적인 응답이었다고 썼다.[25]
버클리의 음악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발매 앨범들은 차트에 진입했다. 《로르카》는 그의 포크 기반을 소외시켰고, 《Blue Afternoon》은 지루하고 미지근하며 "[심지어] 좋은 우울한 음악도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수년에 걸쳐 재평가되었다.[26] 《Blue Afternoon》은 버클리의 마지막 앨범으로, 《빌보드》에서 192위에 올랐다. 이 앨범 이후 버클리는 그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세일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타세일러》에는 프리 재즈 질감과 버클리의 극단적인 보컬 퍼포먼스가 담겨 있었으며, 높은 비명에서 깊고 소울풀한 바리톤까지 다양했다. 이 개인적인 앨범에는 더 접근하기 쉬운 "사이렌에게 바치는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 노래는 이후 로버트 플랜트, 존 프루시안테, 브라이언 페리, 시네이드 오코너, 브렌던 페리에 의해 커버되었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 비평적,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This Mortal Coil의 커버 이후 상당한 컬트적인 지위를 얻어 다시 관심을 받았다.
음악을 제작할 수 없게 되었고 거의 파산한 버클리는 술과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는 연기를 고려하여, 미개봉 저예산 영화 《Why?》 (1971)를 완성했다.[27] 이 영화는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 테이프를 실험적으로 사용한 것이었고, 테크니컬러에 의해 의뢰되었다.[8]
3. 3. 펑크, 소울 (1970-1975)
1970년, 버클리는 자신의 앙상블 밴드 ''Starsailor''를 해체하고 새로운 훵크 밴드를 결성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인사'', ''세프로니아'', ''바보를 봐'' 세 앨범을 발매했다. 버클리는 이전 두 앨범으로 인해 자신의 히피 팬층 상당수를 소외시켰고, "나를 채찍질하고, 때려줘"와 같이 성적으로 솔직한 가사는 곡들이 방송을 타는 것을 막았지만, 컬트 팬은 유지했다.
1975년, 버클리는 라이브 앨범으로 복귀와 관련하여 언론과 접촉했다. 그는 과거에 외면했던 자신의 청중 반응에 맞춰, ''Starsailor''와 ''로르카''를 제외한 자신의 경력에서 가져온 자료들을 개편하여 연주하기 시작했다.
4. 사망
1975년 6월 28일, 버클리는 댈러스에서 1,800명의 매진된 관객 앞에서 공연하며 짧은 투어를 마쳤다.[8] 그는 밴드와 친구들과 함께 주말 동안 술을 마시며 투어를 자축했다. 6월 29일 밤, 그는 오랜 친구 리처드 킬링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 그 과정에서 킬링은 헤로인 가방을 꺼냈고,[11] 버클리는 그 중 일부를 코로 흡입했다.
버클리의 친구들은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만취한 그의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주디는 그를 거실 바닥에 눕히고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11] 그녀는 버클리를 침대에 눕혔다. 나중에 그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그가 숨을 쉬지 않고 파랗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구급대원들이 그를 소생시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8]
검시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버클리는 1975년 6월 29일 오후 9시 42분에 "헤로인/모르핀 및 에탄올 과다 복용으로 인한 급성 중독"으로 사망했다.[28]
5. 사후
버클리는 빚에 시달리며 사망했고, 가진 것은 기타와 앰프뿐이었다.[32] 약 200명의 친구와 가족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33] 그의 아들 제프는 아버지를 단 한 번 만났으며, 장례식에는 초대받지 못했다.[33] 제프 버클리는 1991년 브루클린에서 열린 버클리 추모 행사에서 "I Never Asked to Be Your Mountain"을 공연하며 경의를 표했다.[34]
1990년 이후 그의 미발표 라이브 음원들이 다수 공개되었다.
- 1978년 영화 《귀향》에 앨범 《굿바이 앤 헬로》의 수록곡 "Once I Was"가 사용되었다.
- 1983년, 디스 모탈 코일[46]은 싱글 "This Mortal Coil"로 앨범 《스타세일러》의 "Song to the Siren"을 커버하여 앨범 《눈물의 종결 (It'll End in Tears)》(1984년)에도 수록했다. 1986년에는 앨범 《은세공과 그림자 (Filigree and Shadow)》에서 《굿바이 앤 헬로》의 "Morning Glory"를 커버했다.
- 1992년 4월, 브루클린에서 버클리의 트리뷰트 콘서트가 열렸다. 아들 제프가 데뷔 전 시크릿 게스트로 등장하여 "I Never Wanted to be Your Mountain", "Once I Was"를 불렀다.[47]
- 2000년에 결성된 영국의 밴드 스타세일러(Starsailor)는 버클리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언하고 있으며, 밴드 이름은 앨범 《스타세일러》에서 유래했다.[48]
- "Song to the Siren"은 디스 모탈 코일 외에도, 로버트 플랜트 (2002년), 시네이드 오코너 (2010년), 브라이언 페리 (2010년) 등이 불렀다. 2006년에는 호주 배우 겸 가수 폴라 아룬델(Paula Arundell)의 노래가 영화 《캔디》에 사용되었다.[49]
6. 개인사
1964년 프랑스어 수업에서 메리 기버트를 만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버클리의 음악에 영감을 주었으며, 각자의 불안정한 가정생활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제공했다. 약 1년간 교제 후, 1965년 10월 25일에 결혼했다.[10] 기버트가 임신하자, 버클리는 아버지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부는 아들 제프 버클리가 태어나기 약 한 달 전인 1966년 10월에 이혼했다.[8][10] 제프는 나중에 아버지에 대해 "그는 내가 생후 6개월이었을 때 어머니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신체 부위로 태어났지만, 내가 노래할 때는 나입니다. 이것은 나의 시간이고, 사람들이 내가 그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들은 실망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35]
1970년 4월, 산타 모니카에서 주디 브레조 수트클리프와 결혼했고, 그녀의 아들 테일러 키스 수트클리프를 입양했다.
7. 디스코그래피
팀 버클리는 생전에 9장의 스튜디오 음반과 여러 장의 라이브 음반,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했다.
(참고: 하위 섹션에 스튜디오 음반, 라이브 음반, 컴필레이션 음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이어지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
- 스튜디오 음반: Tim Buckley(1966), Goodbye and Hello(1967), Happy Sad(1969) 등 9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 라이브 음반: Dream Letter: Live in London 1968(1990), Peel Sessions(1991) 등 여러 라이브 음반이 발매되었다.
- 컴필레이션 음반: The Best of Tim Buckley(1983), Morning Glory(1994) 등 여러 컴필레이션 음반이 발매되었다.
그 외에도 120페이지 분량의 책자와 3곡이 수록된 EP CD가 포함된 ''Thin Wires in the Voice''(1999), 공연 실황을 담은 DVD ''팀 버클리: My Fleeting House''(2007), 1967년 세션 데모를 담은 ''팀 버클리: Lady, Give Me Your Key: The Unissued 1967 Solo Acoustic Sessions''(2016) 등이 발매되었다.[37]
7. 1. 스튜디오 음반
제목 | 세부 정보 | 최고 차트 순위 |
---|---|---|
미국[36] | ||
Tim Buckley | — | |
Goodbye and Hello | 171 | |
Happy Sad | 81 | |
Blue Afternoon | 192 | |
Lorca | — | |
Starsailor | — | |
Greetings from L.A. | — | |
Sefronia | — | |
Look at the Fool | — |
7. 2. 라이브 음반
발매 연도 | 음반명 | 레이블 |
---|---|---|
1990 | 드림 레터: 런던 라이브 1968 | Enigma/Manifesto |
1991 | 필 세션스 | Dutch East India/Strange Fruit |
1994 | 라이브 앳 더 트루바두어 1969 | 라이노/Manifesto |
1995 | 허니맨: 라이브 1973 | Edsel/Manifesto |
1999 | 원스 아이 워즈 | Varese |
2000 | 코펜하겐 테이프스 | Pinnacle Licensed Repertoire |
2009 | 라이브 앳 더 폴클로어 센터 1967 | Tompkins Square |
2017 | 베니스 메이팅 콜 | Edsel |
2017 | 그리팅스 프롬 웨스트 할리우드 | Edsel |
2019 | 라이브 앳 더 일렉트릭 시어터 코. | Manifesto |
2021 | 베어의 소닉 저널: 메리 고 라운드 앳 더 캐러셀 | Owsley Stanley Foundation |
7. 3. 컴필레이션 음반
음반명 | 발매사 | 발매일 | 비고 |
---|---|---|---|
The Late Great Tim Buckley | WEA | 1978년 | 호주에서만 발매 |
팀 버클리 베스트 | Rhino | 1983년 | |
모닝 글로리 | 밴드 오브 조이 | 1994년 | |
작업 진행 | 라이노 핸드메이드 | 1999년 | |
꿈은 내 것이다: 희귀 및 미발매 1968–1973 | 매니페스토 | 2001년 | |
모닝 글로리: 팀 버클리 선집 | 라이노 | 2001년 | |
팀 버클리/안녕과 안녕 | 일렉트라 | 2001년 | 첫 두 앨범 컴필레이션 |
테이크 2: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인사/팀 버클리 | 스트레이트/에니그마 | 2005년 | 두 앨범의 2CD 컴필레이션 |
팀 버클리 | 라이노 핸드메이드 | 2011년 | 핸드메이드 2CD. 디스크 1은 데뷔 앨범의 스테레오 및 모노 버전, 디스크 2는 1965년 11월 보헤미안스와 함께한 미발표 녹음 12곡과 1966년 래리 베켓과 함께한 녹음 10곡 수록. |
스타세일러: 선집 | 뮤직 클럽 딜럭스/라이노 | 2011년 | 2CD |
윙스: 완전한 싱글 1966–1974 | 옴니보어 레코딩스 | 2016년 |
7. 4. 기타 릴리스
- ''Thin Wires in the Voice'' (1999) – 120페이지 분량의 책자와 3곡이 수록된 EP CD 포함
- ''팀 버클리: My Fleeting House'' (MVD Visual) (2007) – 공연 실황을 담은 DVD
- ''팀 버클리: Lady, Give Me Your Key: The Unissued 1967 Solo Acoustic Sessions'' (Future Days Recordings) (2016) – 버클리의 1967년 세션 데모[37]
8. 트리뷰트 앨범
- Sing a Song for You: Tim Buckley 헌정 앨범 (Manifesto, 2000년)
- Dream Brother: Tim과 Jeff Buckley의 노래 (Full Time Hobby/Rykodisc, 2005년)
참조
[1]
서적
The Rock Diary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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